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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삼 교수

 

서정삼 교수는 우리나라 순환기학 정착에 기여한 학자 11인 (대한순환기학회 50년사 :  강승호, 이성호, 김기창, 김학중, 김종서, 서순규, 윤해병, 박희명, 서정삼, 손의석, 차홍도) 중의 한 분으로 1950-60년대 미국에서 심장학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한국전쟁으로 망가진 우리나라 의료계를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87년 작성한  “초창기의 암중모색"이라는 회고록에서 1950-60년대의 심장학 연구 상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학생 시절 조광현 교수로부터 배웠다. 심전도 기계는 구경도 못하고 PQRST라는 기호만 배우고 대학을 졸업하였다.”

 

서울대 부속병원의 심전도기도 고장 나고 기록 테이프가 없어 작동이 안 되었다.”

 

생리학교실에 가서 심전도를 찍을 때는 자기장 차단 철망에 들어가서 기록했다.”

 

1949이돈희, 서순규, 이문호 교수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심장학 연구를 배웠다.

1953콜럼비아 대학에 가서 6년 동안 내과 수련을 받은 후, 세브란스 의대 교수로 봉직하다가, 1963년 다시 미국 휴스톤의 Baylor 의대에서 심장학 전문 수련을 받았다. 귀국한 1963년 차홍도, 센팅가 교수와 함께 세브란스병원에 심장 센터를 개설하였고, 1965년에 대한순환기학회 학술상이 제정되는데 최초의 학술상은 서정삼 교수의 논문 “승모판 절개술에 수반되는 혈역학적 변화”가 받았다.

 

1971년 서정삼 교수는 대학 교수의 명예를 포기하고 개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데 그 시절에는 대학교수가 개인병원에 겸직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시절이었다.

 [매머드化하는 臨床敎授開業(1971.5.18. 경향신문)], [國公立병원 醫師 二重 開業 성행(1973.11.27. 동아일보)] 등의 기사에서

“교수 자리를 용감하게 박차고 나온 서정삼 교수는 20년 대학생활을 청산하는데 고통스런 번민을 했다"고

실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2년 개원의로서는 처음으로 대한순환기학회 회장을 맡으면서 심장학의 선진화와 국제 학술 교류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일본과의 공동 순환기학 학술대회 정례화가 대표적이다. 1982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내과 부장으로 이직한 후 고려병원 효석 심장연구소 (1985), 고려병원 심장센터 (1987) 설립하여 심장학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1990년대 들어서 [심장병 백과], [성인병 백과] 등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한국성인병 예방협회 (현 한국 만성질환예방협회) 회장을 4차례(1991-2001) 역임하면서 대중을 위한 심장학 지식 보급에 열정을 쏟으셨다.

 

 

 

* 조범구 교수의 증언과 서경석, 박희남 교수의 자료 제공,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참조함.

 

 

서정삼 교수 약력

 

1928.5.12. 출생

1946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졸업

1961 연세대학교 의학박사

2013.10.11. 별세

 

1950-1958 미국 뉴욕시립병원, Columbia 대학 일반내과 수련

1958-1971 세브란스 의과대학 교수

1963 국내 최초 인공심폐기 사용 심방중격결손증 수술

1963-1964 미국 휴스톤 Baylor 대학 심장학 수련

1968 국내 최초 심도자/ Lown 제세동 시행

1969 국내 최초 체외심박조율 시행

1971-1981 서정삼 내과의원

1982-2001 고려병원

 

1972 16대 대한순환기학회 회장

1984 28대 대한순환기학회 회장

1991-2001 제 7-10한국성인병 예방협회 회장

 

(서정삼 교수님의 사진 등 관련 기록물과 회고담, 심장박물관의 기록에 대한 수정 등의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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