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호 교수
강승호(姜承鎬) 교수는 내과학이 가장 중요한 임상의학이며 그 중에서도 심장이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고 생각하여 심장학을 전공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심장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여 심전도, 심도자법, 심기능 검사법이 개발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독자적인 유학을 준비하였으나 1950년 6.25 사변을 맞아 부산 광복동 [전시연합 의과대학]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함께 근무하는 미군 군의관으로부터 미국 의사협회 학술지 (JAMA)를 빌려보며 새로운 의학 지식을 공부하였다. 서울대학교의과대학의 미네소타 플랜으로 유학 길에 올라 Mayo clinic에 갔으나 하버드 대학의 Paul D. White 교수에게 옮겨 유학하였다. 1956년 8월부터 1년5개월 동안 미국 하버드 대학의 Beth Israel병원에서 유학하였다. 하버드 대학에는 8-9명을 선발하여 2개월간 집중하여 심장학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 과정을 이수하고 나니 심장학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실력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White 교수와 Wolff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심전도 판독에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Wolf Parkinson White 증후군을 기술한 저명한 심장학 교수들이다. 아울러 인근의 Peter-Bent-Brigham 병원에 가서 Levine 교수와 Dextra 교수로부터 심도자술을 익혔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봉급을 절약하여 당시로서는 신형 의료장비인 Sanborn 51 모델 심전도기를 구입하여 귀국시 반입하였다.
이 장비는 귀국 후 2년 동안 서울대학교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소중하게 사용되었다.
환자 진료에 힘을 쏟으면서 대한순환기학회 창립에도 힘을 모았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한 심장내과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대한 내과학회의 첫 분과학회로서 순환기학회를 창립하였다. 1957년 5월 종로구 경운동 [종로구 의사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회장에 강승호 교수, 부회장에 조광현, 이규택 교수가 선출되었다. 1959년 9월25일 “임상심전도학”을 출판하였다.
내가 후배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모든 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진국에 뒤지고 있는 기초의학의 발전을 위하여
순환기학 분야에서도 실험적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달라”
는 것입니다.
내가 즐겨 외는 고전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小醫는 治病을 하고 中醫는 治人을 하며 大醫는 治國을 한다.”
환자 개개인을 치료하면서도 국민과 세계 인류 건강에 공헌하기 바란다.
(* 대한심장학회 50년사와 노영무, 강순범 명예교수의 회고를 참고함.)
강승호 교수 약력
1912년 10월 21일 출생
1932년 3월 대전공립중학교 졸업
1936년 3월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1943년 12월 31일 의학박사학위 취득
1987년 5월 6일 별세
1936년 4월 경성의학전문학교 조수
1943년 10월 경성의학전문학교 강사
195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교수
1955년 4월 미국 하버드 대학 방문 교수
1958년 11월 대한순환기학회 초대 회장
1970년 대한내과학회 회장
(강승호 교수님의 사진 등 관련 기록물과 회고담, 심장박물관의 기록에 대한 수정 등의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